세기의 사랑 >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던 "이멜다 마르코스"의 영화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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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사랑 >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던 "이멜다 마르코스"의 영화같은 사랑

피치알리스 발행일 :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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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박근혜 탄핵 판정으로 시끌벅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차례 촛불 시위로 6개월간의 사투는 탄핵판정으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큰 사건으로 자리잡았다. 더군다나 나는 해외에 거주하는데 여기저기 소식통을 재빨리 받아서 한동안 비아냥 거렸다. 결국엔 정의가 승리했다. 

그런 광경을 먼 곳에서 보면서 오늘 이야기는 필리핀 사치의 여왕 "이멜다 마르코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세기의 사랑으로 알려진 이멜다와 마르코스의 대통령의 사랑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헌신적인 사랑이 사치를 심하게 부리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50년대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크게 경제성장을 거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탄광사고와 각종 자연재해, 부폐정치로 경제가 급 하락했다.


90세 가까이 되지만, 진한 메이크업과 보석들과 네일아트까지 눈에 띈다.

이멜다 마르코스 (1929년 7월 2일생, 만 87세)

비사야섬에서 태어났다. 옛 스페인 가문 메스티조계에서 출신으로 아버지 역시 학식이 풍부한 변호사 지방유지로써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부인이 병사함으로 그녀의 생모와 합치면서 집안의 가세가 기울자 유복하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유독 정치와 법률같은 사회과목에 성적이 좋았고, 이목을 끄는 외모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성장함과 동시에 고모의 덕택으로 필리핀수도 마닐라 대도시로 유학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많은 남성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단기 법률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때를 기점으로 정치인, 법률인 등등 다양한 인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큰 키와 날씬한 몸매로 모델활동을 하였고, 마침 그녀의 친구 남편(법률가)의 제안으로 1953년 미스 필리핀대회에서 출전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그러면서 저명인사들과 파티를 참석하면서 1954년 4월 6일 상원이었던 마르코스를 만나게 된다.




마르코스의 집안은 정치가 집안이었으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법률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이멜다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의 프로포즈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멜다의 매력은 수년간 독재정치를 했던 마르코스의 마음을 사르르 녹아들게 되었다. 그가 이멜다에게 프로포즈를 한 일화가 있는데, 그만한 재력이 갖춰짐에도 불구하고 이멜다는 그의 구애에 거절했지만 어느날은 수천개의 진주가 있는 방을 데리고 가서 진주를 보여줬는데 진주가 7107개의 진주로 필리핀 섬숫자에 맞게 진주를 보여주면서 장차 이 나라를 책임질 사람이 될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어서 프로포즈에 승낙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난지 채 13일밖에 되지 않아서 결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결혼한 후, 이멜다의 자신감과 사치는 지나칠 정도였다. 당시 유명한 영화인들과 마르코스의 일화를 담은 영화를 제작했으며 각종 파티를 주최하면서 이멜다는 당시 1000켤레가 넘는 구두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서 박물관이나 극장, 영화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마르코스 홍보운동으로 많은 돈을 투자하였고, 여행을 자주 다녔다. 그로 인해서 필리핀경제가 기울어졌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왔다. 당시 예술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필리핀의 영화산업도 지금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무려 20년간 장기집권으로 언론비판의 여파로 서서히 물러날 때 쯤 이멜다와 마르코스는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이멜다는 해외에서 다양한 구두를 구매해서 구두 3000켤레를 소유하고 있어서 큰 논란을 삼기도 했다.


그녀의 겉모습만 봐도 얼마나 사치를 부리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지나서 1989년, 마르코스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시신을 고국에 안치하기 위해서 다시 귀국한다.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주는 사치스러운 사람으로 비판의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지원과 마닐라 시장, 하원의원으로 국가적으로 크게 활동하는 인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살아 생전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그녀에게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마르코스는 밖에서 잠을 자다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내가 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죠."

"잠든 그 순간에도 그리워했던 사람은..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당시 꽃같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봤을 때, 그녀가 마르코스의 뮤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시선을 끄는 과장된 드레스 소매와 뽕을 심하게 넣은 머리는 언론에 큰 이목을 끌었다.

독재자인 줄만 알았던 마르코스 전대통령은 이멜다에게 정말 헌신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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