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헤치기 > 소녀의 눈물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 철거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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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헤치기 > 소녀의 눈물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 철거 요구>

피치알리스 발행일 : 201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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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의 눈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일본, 위안부 소녀상 철거 요구


일본 정부가 27일 열린 제5차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에 설치돼 있는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와 미국의 위안부 기림비에 대한 철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와 관련해 한국이 일본에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에 상응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조치를 요구했다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이 30일 밝혔다. 이는 ‘요시다 증언’과 관련한 아사히신문의 오보 사태 이후 일본 정치권 일각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소녀상과 기림비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음에 따라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성격이 아니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일본이 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면 관련된 민간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정부가 보증할 성격은 아니다”면서 “일본이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일본 위안부 문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실마리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우리 사회에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일어나고 '고요속의 외침'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위안부문제는 양국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세계를 넘어선 인권모독임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없습니다.일본에 회피에 우리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뼈아픈 과거를 더 들춰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이상 사라져가는 그들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게만 들리고 일본이란 나라에서 도대체 그들의 잘못 조차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어이없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마치 먼나라이야기로만 알고 오랜시절 일제감정기때 일어났던 일들을 그대로 무마시키려고 하니 도저히 두고 볼 수만 없고, 위안부 할머니의 메아리가 되어서 이 글을 이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과거 일본이 한국의 10대 소녀들을 착취해서 저질렀던 행동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아직도 일본의 역사에서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순겨진 이야기들입니다. 숨겨진 과거사를 보면 정말로 뼈아픈 과거사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이 일본으로 부터 마루타(고목나무의 의미로 일본 의학실험 때 중국인과 한국인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도입)가 되어야만 했던 사연, 과거 우리 민족열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시킨 사연, 그리고 가장 세계에서 이목이 되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던 위안부할머니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고백이 더 이상은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있는 일본의 반응





아베총리의 발언에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베총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해외에 널리 선전된 결과 일본의 명예가 상처를 크게 입은 것은 사실"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요시다는 1970년대부터 고백 수기 등을 통해 자신이 태평양 전쟁 말기 시모노세키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으로 한국에 건너가 제주도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노무자들을 대거 강제연행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요시다의 저서에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증언하였지만 그의 책이 보관된 일본도서관에서 훼손된 사건일 발생이 되었습니다. 과거 일본인들의 잘못조차 인정을 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만행에 속이 까맣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어두운 과거속에 숨어 지내야만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소리없이 고통스런 과거를 눈물로 삼키며 살아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총리의 발언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습니다. 일본군의 강제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는 당시 16만이었지만 현재 생존한 할머니는 겨우 55명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들이 생전에 해왔던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이 떠나기 전 반드시 그들의 악질적인 만행에 사과를 받아 마땅하고 그것의 대가를 지불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아무런 대가가 없는 인간이하의 대우속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은 멈출 수가 없었고, 그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미 前대통령 클린턴은 역사속에 왜곡되어진 '위안부'를 '성노예'로 표기해야 정확하다고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만큼 세계가 위안부문제에 대한 대책이 앞장서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그것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서질 않고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라는 이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간 당시위안부소녀들의 모습, 어렵게 위안부수용소에서 빠져 나온 소녀들은 한 미국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전장터의 소녀들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야만 했었던 사연. 1920년 일제강점기시절 10대의 꽃다운 나이에 가족을 위해서 소녀들은 야학교에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소리를 듣고 타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바다건너 배를 타고 먼 길을 떠나게 된 소녀들이 도착한 곳은 그 어느 누구도 반갑게 맞이할 수 없는 곳이었고, 춤과 노래를 배우면서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쓰여져야 되는 현실을 알아챈 뒤 아편을 맞은 환각상태에서 초라한 움막에서 수많은 일본군을 위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당시 일본이 점령한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의 소녀들을 속임수로 끌고와서 성노예를 삼았고, 지금은 이들을 '위안부'라고 부릅니다.




세월이 흘러 꽃다운 소녀들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십년을 말못할 고통속에서 지내야 되었고, 위안부 사실이 세상에 밝혀진 건 불과 20년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들이 과거의 아픔을 모두 숨기고서 소리없이 지내야만 했지만 과거 모든 진실을 회피하는 일본에게 대응하여 아픈 과거를 들쑤시며 그들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만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요집회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과를 전혀 듣지도 못하고 자식과 남편이 없는 고독속에서 외로이 한 세월을 보내고 마지막까지 일본은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살아있다면, 살아있다면....."  잊혀져 가고 있는 과거에 찢겨지는 고통을 누가 대변할 수 있을까. 더이상 안좋은 소식을 들으면 저 역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겠습니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의 도는 어디까지 일지.. 과거 역사를 봐도 일본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시길 바랄뿐입니다.



▲ 충격 위안부피해자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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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객관적인 생각으로 직접 작성한 글이 오니 트랙백은 허용하나, 무단사용은 금합니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뽑아야 되는 문제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길 진정 바랍니다.


공감 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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